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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퇴사의 정신건강

정신과 전문의가 말하는 조용한 퇴사와 우울증의 관계

by skdkgk 2025. 8. 1.

조용한 퇴사, 단순한 유행일까?

최근 몇 년 사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퇴사라는 표현이지만, 실제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이 용어는 주어진 업무 외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투입하며 조직에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는 태도를 말한다. 겉보기엔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심리 상태가 자리 잡고 있다.

 

조용한 퇴사는 전통적인 의미의 게으름이나 무책임과는 다르다. 오히려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다가 회의감이나 번아웃, 무력감을 겪은 이들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조용한 퇴사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현재 직장인들의 정신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일종의 ‘심리적 신호’다. 특히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 현상을 우울증 초기 단계의 일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들의 진단에 따르면, 조용한 퇴사는 단순한 업무 거부가 아니라 정신적인 탈진 혹은 우울증의 서막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가 말하는 조용한 퇴사와 우울증의 관계

우울증의 초기 증상으로서의 ‘거리두기’

정신과 전문의들은 조용한 퇴사의 원인을 단순한 업무 스트레스나 조직 문화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 근본적인 심리 상태의 변화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열정적으로 참여하던 회의에서 점점 침묵하게 되고, 업무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며, 자주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면, 이는 단순한 권태가 아니라 우울증의 전조일 수 있다.

 

우울증의 초기 증상 중 하나는 세상과의 거리두기다. 이는 직장 내 인간관계를 포함하여 점점 자신이 속한 환경으로부터 정서적 거리를 두게 만드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이런 심리적 ‘철수’가 반복되면, 일상생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말에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취미 생활조차 즐겁지 않으며, 사회적 만남을 피하게 된다. 조용한 퇴사는 바로 이런 정서적 탈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즉, 직장이라는 일상의 중심축에서 먼저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전반적인 우울 상태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책임감이 강하고,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들에게 더 자주 나타난다. 과도한 기대와 성과 압박 속에서 자신을 혹사하던 이들이 어느 순간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말 없이 물러나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를 단순한 ‘직무 태도 변화’가 아니라 ‘정신 건강에 대한 경고 신호’로 봐야 한다고 경고한다.

 

조용한 퇴사를 선택한 이들의 심리 구조

조용한 퇴사를 선택한 이들은 흔히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다”거나 “성취에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 같은 심리 구조를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아무리 애써도 결과가 나아지지 않는 반복된 경험 속에서 결국 스스로 의욕을 꺾는 심리적 방어 기제다.

 

이러한 무기력은 업무뿐만 아니라 자존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업무 성과가 곧 자존감으로 연결되는 구조 안에서 살아온 이들은, 조용히 업무에서 발을 빼는 순간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감정은 곧 우울감으로 이어진다. “이러다 진짜 그만둬야 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의욕이 없을까?”와 같은 자문이 반복되면서, 정서적 침체 상태가 심화된다.

 

더 큰 문제는 주변에서 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출근을 하고, 업무도 최소한으로는 하고 있기 때문에, 동료나 상사는 그 사람이 우울증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심지어 본인조차도 이 상태를 단순한 ‘권태’ 정도로 여기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병이 깊어질 때까지 방치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태를 방치하지 말고, 조기에 상담이나 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한다. 특히 감정의 기복이 크거나, 무기력감이 2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는 꼭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조용한 퇴사는 단순한 업무 거부가 아니라, ‘자기 파괴의 서막’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조용한 퇴사 이후, 회복을 위한 심리적 처방

그렇다면 조용한 퇴사를 경험한 이들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우선 중요한 것은 자신이 처한 심리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그냥 회사가 싫어진 것 같다’는 식의 애매한 판단이 아니라, ‘내가 지금 정서적으로 지쳐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출발점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를 ‘자기 감정에 이름 붙이기’라고 부른다. 감정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순간, 사람은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는 일과 나 사이의 건강한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은 일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에서의 실패나 좌절이 곧 ‘내 존재 자체의 실패’로 연결되곤 한다. 하지만 삶은 직장 외에도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일을 하나의 역할로 인식하고, 그 외의 취미, 인간관계, 휴식을 적극적으로 챙기며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필요하다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심리 상담, 정신과 치료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정기적인 심리 상담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국내에서도 기업 차원에서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조용한 퇴사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사회 전체가 겪고 있는 ‘정신적 피로의 징후’다. 그렇기에 이를 부끄럽게 여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심리 상태를 직시하고, 건강하게 회복하려는 시도가 더욱 용기 있는 행동이다.

 

침묵 속에 들리는 도움의 신호

조용한 퇴사는 단지 ‘일하기 싫다’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보내는 분명한 신호이며, 정신 건강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알람일 수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이 말하듯, 이 현상은 단순한 태도 변화가 아니라 ‘우울증의 그림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조용한 퇴사의 순간을 자기 보호의 시간으로 삼고, 더 깊은 우울로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점검하고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상 속 작은 감정 변화들을 가볍게 넘기지 말고, 그 속에서 들리는 ‘도움이 필요한 목소리’를 경청하는 태도가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