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가짜 소통'에 지친 마음: 조용한 퇴사로 나를 지키다

겉돌기만 하는 대화: ‘소통’이라는 말의 오용

보여주기식 소통의 실체

회사에서 ‘소통’이라는 단어는 이제 너무 흔하게 들립니다. 회의 자리에서는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라 하고, 피드백은 언제든 환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이야기를 꺼내보면, 돌아오는 건 묵묵부답이거나 정제되지 않은 반응뿐입니다. 소통의 핵심은 상호 이해와 존중인데, 많은 회사들은 그저 ‘말하는 척’만 합니다. 일방적인 브리핑, 정해진 방향에 맞춘 회의, 형식적인 타운홀 미팅 등은 직원들에게 오히려 소외감을 안깁니다.

'듣는 척' 하는 리더십

많은 조직에서 리더는 구성원의 의견을 듣는 것보다, ‘의견을 수렴했다는 흔적’을 남기기에 바쁩니다. 슬랙, 노션, 사내 게시판 등 디지털 도구는 넘쳐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없습니다. 직급이 낮은 직원일수록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거나 왜곡된 채 보고된다는 걸 압니다. 결국 말하지 않게 되고, 말할수록 피곤해지니 점점 침묵하게 됩니다. 이 침묵은 단지 말의 부재가 아니라, 감정과 열정의 단절입니다.

회사 안에서 무너지는 자존감

‘소통’으로 위장된 통제

‘우리는 열린 조직입니다’라는 문구 뒤에는 사실상 강압적인 통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통을 빌미로 개인의 일하는 방식을 검열하고, 업무 처리 스타일까지 간섭합니다. 자기만의 루틴을 구축하고 싶은 직원들은 결국 조직의 틀에 억지로 맞추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점점 자존감을 잃게 됩니다.

 

어떤 직장은 직원에게 자율성을 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보고 방식’을 자유롭게 하라는 말일 뿐입니다. 진정한 자율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인데, 그런 구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소통'이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감시와 통제를 정당화하게 됩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

이런 조직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듭니다. "내가 여기서 성장하고 있는 걸까?", "내가 하는 말은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을까?" 처음 입사할 때 가졌던 기대와 동기는 점점 퇴색됩니다. 업무 성과와 관계없이 존재가 가볍게 취급될 때,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됩니다. 이는 직무 만족도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질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에서 무기력과 좌절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퇴사’라는 결정을 고민하게 됩니다.

 

조용한 퇴사, 떠나기 전의 마음 정리

말없이 무너지는 사람들

요즘은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는 말이 익숙해졌습니다. 꼭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고 ‘정해진 일만’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책임을 줄이되 의무는 지키며, 감정적인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합니다.

 

이 방식은 소극적인 도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과잉 업무, 부족한 인정, ‘가짜 소통’에 지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입니다. 조직의 시스템은 쉽게 바뀌지 않기에, 개인이 먼저 자신을 보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용한 퇴사도 하나의 ‘행동’이다

조용한 퇴사는 무기력의 표현이 아니라,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애써 개선하려 노력했던 사람일수록 이 선택은 더 깊은 고민 끝에 나옵니다. 단지 입을 닫고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정리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과정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회사의 ‘공감하는 척’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움직입니다.

 

나를 지키는 퇴사: 변화의 시작

진짜 소통은 조직 밖에서 시작될 수 있다

퇴사는 단지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되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거나 잠시 멈춰 쉬는 시간 속에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조직 내에서 경험했던 ‘가짜 소통’은 오히려 진짜 소통의 중요성을 더 깨닫게 해 줍니다.

 

퇴사 후, 많은 사람들이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거나 창업, 프리랜서의 길을 선택하면서 자신만의 언어와 리듬을 다시 찾아갑니다. 회사 밖에서는 말이 곧 신뢰이며, 소통은 곧 생존입니다. 그곳에서는 듣지 않는 리더가 설 자리가 없고, 피드백이 생존 전략이 됩니다. 그렇게 진정성 있는 관계를 통해 자신도 성장하게 됩니다.

변화는 내 안에서 시작된다

퇴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회사를 떠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안에서 무너지는 자신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게 됩니다. 진짜 소통을 원한다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목소리를 가졌고, 그 목소리가 묵살되는 곳에 오래 머물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퇴사를 결심한 당신은 이미 큰 용기를 낸 것입니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행동’입니다. 이제는 외부의 인정보다 스스로의 존중을 먼저 세워야 할 때입니다. 조용한 퇴사는 그래서 조용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참았던 시간만큼의 깊은 울림과, 앞으로의 삶을 다시 써 내려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