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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퇴사의 정신건강

조용한 퇴사는 직장 왕따를 피하는 방식일까? 사회적 관계와 정신건강 분석

by skdkgk 2025. 7. 26.

조용한 퇴사의 의미와 배경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는 개념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이는 문자 그대로의 퇴사가 아니라, 더 이상 업무 외의 추가적인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뜻하는 신조어다. 기존에는 승진이나 인정, 조직 내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자발적으로 초과 근무를 하거나, 업무 외적인 책임까지 떠맡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일은 일일 뿐,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조용한 퇴사가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무책임이 아니다. 오히려 직장에서의 과도한 스트레스, 감정 노동, 그리고 조직 내 정치에 지친 이들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로 볼 수 있다. 회사가 나를 챙겨주지 않는데, 내가 왜 회사를 위해 희생해야 하느냐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조용한 퇴사는 말하자면 '감정적 이직'이며, 내적으로는 이미 회사를 떠난 상태에서 형식상으로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이 실제로 직장에서 벌어지는 집단 내 갈등, 특히 '왕따'와 같은 문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또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이러한 선택이 개인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조용한 퇴사를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인간관계와 심리의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조용한 퇴사는 직장 왕따를 피하는 방식일까? 사회적 관계와 정신건강 분석

직장 내 왕따와 조용한 퇴사의 교차점

직장에서 벌어지는 왕따는 단순한 개인 간 갈등을 넘어선다. 반복적인 무시, 고의적인 소외, 악의적 소문 등은 구성원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나아가 조직의 기능 자체를 마비시키는 요인이 된다. 특히 수직적인 조직 문화가 강하거나, 폐쇄적인 업무 환경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은밀하고 치명적으로 일어나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조용한 퇴사는 일종의 방어막이 된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문제의 표적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은, 자신을 눈에 띄지 않게 함으로써 갈등을 피하려는 전략이다. 특히, 이미 직장 내에서 소외감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관계를 더 이상 회복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철저히 '중립적 위치'에 놓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직장 내 따돌림을 겪었던 이들 중 일부는 조용한 퇴사를 통해 감정적 소모를 줄이고, 자기 삶의 통제권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태도는 또 다른 형태의 고립을 불러올 수 있다. 조용한 퇴사를 실천하면서 동료들과의 관계는 점점 느슨해지고, 협업 과정에서의 존재감은 사라진다. 결국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타인에게는 '무성의하다', '소극적이다', 혹은 '팀워크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다. 즉, 왕따를 피하려 했던 전략이 결과적으로 또 다른 형태의 거리감과 소외를 초래하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와 정신건강의 균형

직장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회적 장이다. 따라서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존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소속감은 정신건강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하버드대학교의 75년간 진행된 인간행복연구에서도, 삶의 만족도와 장기적인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양질의 인간관계'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조용한 퇴사는 이 균형을 재조정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무리한 야근, 눈치 보기, 감정노동으로 인한 번아웃 상태에서 벗어나 자아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관계의 약화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정신건강에 반드시 긍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를 통해 의미를 찾는 존재이기 때문에, 의도적인 관계 단절이 오히려 고립감과 우울을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조용한 퇴사 이후에도 감정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면, 직무 몰입도가 낮아지고 자기 효능감이 떨어지며, 결국엔 조직 내에서의 자아정체감까지 흔들릴 수 있다. 이는 일시적인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회피적 성향을 강화시켜 새로운 환경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조용한 퇴사의 방향성과 건강한 선택

그렇다면 조용한 퇴사는 무조건 피해야 하는 방식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선택이 나의 심리적 상태와 환경에 대한 '의식적인 판단' 아래에서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단순히 회피하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업무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이는 자기 자신에게도 해가 된다. 그러나 자신의 정신적 건강을 회복하고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전략적 조절이라면, 조용한 퇴사는 유효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보다 바람직한 방향은 '관계의 깊이'보다는 '관계의 경계 설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무리하게 동료들과 친밀함을 만들려고 애쓰기보다는, 나의 에너지와 감정의 소모를 최소화하면서도 협업과 기본적인 관계는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동시에 고립감이나 소외감의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직장 외부에서의 관계망도 중요하다. 회사에서의 만족도가 낮더라도, 가족, 친구, 취미 활동 등에서 정서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전체적인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외부 자원이 조용한 퇴사를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나아가 건강한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한다.

 

결국 우리는 '완전히 끊기'보다는 '유연하게 다루기'를 배워야 한다. 조용한 퇴사는 하나의 선택일 수 있지만, 이 선택이 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감정, 관계, 그리고 일에 대한 태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침묵 속에 진심이 담겨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조용한 퇴사도 단순한 무관심이 아닌, 자기 회복과 성장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