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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퇴사의 정신건강

성과주의가 만든 유령 직장인 : 조용한 퇴사의 그림자

by skdkgk 2025. 7. 30.

성과주의는 정말 공정한가?

한때 직장인의 성과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보상하기 위한 ‘성과주의’는 공정함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모두가 정해진 목표를 향해 일하고, 그에 따라 성과를 내면 합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이 시스템은 표면적으로는 이상적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과주의의 이면에는 여러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사람을 숫자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인간미가 사라졌고, 단기적인 실적에만 집착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특히 기업 문화에서 ‘성과’라는 단어가 곧 사람의 가치를 의미하게 되면서, 실적이 낮거나 눈에 띄지 않는 직원은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성과주의는 애초에 모든 직무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어려운 기준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고객 응대, 사내 커뮤니케이션, 업무 조율과 같은 정성적 업무는 숫자로 측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성과주의 체계에서는 이런 업무조차도 무리하게 수치화하려 하다 보니,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중하는 문화가 생겼고, 이는 조직 내부의 균형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직원들은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경쟁하게 되었고, 실질적인 팀워크는 사라지고 말았다. 성과가 좋지 않으면 조직에서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은 직장인들을 ‘생존’ 중심의 사고로 몰아넣었다.

성과주의가 만든 유령 직장인 : 조용한 퇴사의 그림자

유령 직장인의 탄생,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성과주의가 뿌리내린 조직에서는 점점 더 많은 ‘유령 직장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출퇴근을 하고, 자리에 앉아 업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직에 최소한의 에너지와 시간만을 투입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더 이상 조직에 헌신하거나, 성장하려는 욕구를 드러내지 않는다. 상사와의 갈등도 피하고,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으려 하며, 주어진 일만 소극적으로 처리한다. 직무 수행의 의무는 지키되, 그 이상은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렇게 탄생한 유령 직장인은 단순히 게으르거나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열심히 일하다가 성과주의의 벽에 부딪혀 상처 입고,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일 수 있다.

 

이러한 유령 직장인의 증가에는 조직의 피로도가 큰 몫을 한다. 성과에 대한 압박이 너무 크거나, 인정받기 어렵다는 좌절감이 반복되면, 사람은 자연스레 에너지를 아끼고 감정을 차단하게 된다. 이들은 퇴사를 결심할 정도로 결단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열심히 일할 의지도 잃어버린 상태다. 그래서 이 현상을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리적인 퇴사는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조직을 떠난 것과 다름없는 상태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조직 전체의 생산성과 문화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조용한 퇴사, 세대 간 인식의 충돌

조용한 퇴사는 특히 MZ세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나타난다. 이전 세대가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성실성을 중시했다면, MZ세대는 일과 삶의 균형, 개인의 만족과 자아실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은 ‘회사에 목숨 걸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회사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나 역시 회사를 위해 무조건 희생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지닌다. 이러한 가치관은 기존의 성과주의 문화와 충돌을 일으킨다. 상사는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빠르게"를 요구하지만, 직원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와 유연 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조용한 퇴사의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물리적으로 상사의 감시에서 벗어난 환경은 직원에게 자율성과 동시에 무기력함을 가져왔다. 직장인은 이제 성과보다 ‘번아웃’을 더 두려워하며, 조직 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한다. 소극적이며 방어적인 근무 태도는 결국 유령 직장인을 양산하고, 조직의 전반적인 에너지와 창의성을 갉아먹는다. 이처럼 조용한 퇴사는 단순한 세대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인 조직문화와 가치관의 변화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해답은 ‘성과’가 아닌 ‘관계’에 있다

이제 조직은 단순히 수치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일정 수준의 성과 평가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직원의 모든 것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개개인의 역량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 어떻게 하면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구성원이 조직의 일부로서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가 가치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자발적인 동기부여가 시작된다. 그런 환경에서는 유령 직장인도, 조용한 퇴사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

 

조직이 변하려면 리더부터 달라져야 한다. 단순한 지시와 평가 중심의 리더십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성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바라보고, 실패하더라도 함께 책임지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계 중심의 조직 문화가 정착될 때, 직원들은 다시 일에 몰입하게 되고, 조용히 퇴사하던 마음도 자연스레 돌아설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KPI가 아니라, 더 나은 대화와 신뢰다. 결국 사람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다가갈 때 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