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일하고 싶은 사람들, 이상한가요?
“그냥 시키는 일만 하고 퇴근하면 안 될까요?”라는 질문은 최근 MZ세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주 들리는 이야기다. 이는 단순한 나태함의 문제가 아니다. 이 말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며 일하고 싶다’는 바람과, ‘그 이상을 요구받는 현재의 직장 문화에 대한 불편함’이 공존한다. 그러나 많은 조직은 여전히 ‘업무 외 시간의 헌신’을 미덕으로 여기며, 시간을 넘어선 열정을 기준 삼아 인재를 평가한다. 그 결과, 오로지 정해진 시간에만 충실히 일하는 사람은 무능하거나 비협조적으로 낙인찍히기 쉽다. 하지만 그 낙인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조용한 퇴사와 번아웃 사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감정들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는 사실 말 그대로의 퇴사가 아니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 외에는 더 이상 시간을 쓰지 않겠다는 소극적 저항의 표현이다. 더 일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감정적으로 소진되지 않기 위한 ‘자기 방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조용한 퇴사의 이면에 번아웃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야근, 모호한 업무 지시, 부족한 피드백, 그리고 리더십의 부재는 구성원에게 ‘열심히 해도 바뀌는 건 없다’는 무력감을 안긴다. 조용한 퇴사는 그런 무력감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는 게으름이 아닌 ‘심리적 퇴사’에 가깝다.
우리는 왜 업무 시간만으로는 인정받지 못할까
조직은 오랜 시간 동안 ‘열정’이라는 이름 아래 직원의 자율성을 침해해왔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사람, 주말에도 회사 메신저를 확인하는 사람, 자기 일 외에도 타인의 업무까지 책임지는 사람을 '모범 직원'으로 포장해왔다. 반면, 정확한 시간에 출근해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소극적’이라며 평가 절하된다. 이는 효율과 결과보다 ‘얼마나 더 헌신했는가’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과연 헌신만으로 조직이 성장하는가? 시간에 대한 무제한 투입은 장기적으로 사람을 지치게 하고, 결국 성과보다 더 큰 인력 손실을 불러온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번아웃과 조용한 퇴사의 증가다.
업무 시간만 일하는 것이 문제일까, 아니면 시스템일까?
업무 시간에 집중해 일하고, 그 외 시간은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정상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업무 시간 내에 생산성을 얼마나 올릴 수 있는가’이지, ‘얼마나 더 오래 자리에 남아 있었는가’가 아니다. 조용한 퇴사나 번아웃은 개인의 의지나 성격 문제가 아니라, 비효율적이고 감정 노동을 방치한 조직 구조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제는 직원의 시간과 에너지를 존중하는 조직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업무 목표의 명확화, 불필요한 야근과 회의의 축소, 성과 중심의 평가체계 마련 등이 필요하다.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도 충분히 유능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을 때, 조직은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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