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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퇴사의 정신건강

조용한 퇴사 전후, 정신과 진료 통계로 본 직장인의 마음

by skdkgk 2025. 7. 24.

조용한 퇴사 : 더 이상 견디지 않겠다는 조용한 선언

최근 몇 년 사이,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는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얻는 키워드가 되었다. 조용한 퇴사는 단순히 퇴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리적인 퇴사 전, 감정적·심리적으로 조직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과정이다. 업무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만을 수행하고, 더 이상 조직의 과도한 기대나 불합리한 문화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퇴사라는 극단적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내면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막’인 셈이다.

 

그동안 직장인들은 충성심과 책임감을 미덕으로 여기는 조직 문화 속에서 자아를 희생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대는 조직보다 ‘나’를 우선시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 퇴근 후에도 메신저로 업무 지시가 이어지고, 성과에 비해 보상은 미비하며, 인간관계에서 오는 소진이 반복되면서 직장에 대한 환멸이 쌓였다. 이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조용한 퇴사다. 말없이 자신의 에너지를 회수하고, 조직에서 한 걸음 물러난다. 이는 반항이 아니라 자기 존중이다.

조용한 퇴사 전후, 정신과 진료 통계로 본 직장인의 마음

정신과 진료 통계로 드러나는 무너진 마음들

이러한 조용한 퇴사 현상은 통계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20~40대의 정신과 진료 인원은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불안 장애, 우울증, 번아웃 증후군(탈진 증후군)으로 진료를 받는 직장인의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는데, 이는 팬데믹과 함께 디지털 업무 환경이 가속화되면서 경계 없는 노동이 일상화된 영향도 크다.

 

2024년 기준, 30대 직장인 중 정신과 진료를 경험한 비율은 약 11%에 이른다. 이는 5년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심지어 실제로 병원을 찾지 못한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치는 훨씬 클 것이다. 회사의 압박과 실적 중심 문화, 평가 스트레스, 인간관계 갈등 등은 단순히 힘든 것이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심리적 손상을 유발하고 있다. 마음이 무너진 채로 출근을 반복하다 결국 병원을 찾는 것이다. 그만큼 일터는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보다 상처를 주는 공간이 되었다.

 

퇴사 이후에도 이어지는 정서적 공백

‘조용한 퇴사’를 거쳐 실제로 직장을 그만둔 후에도 직장인의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서적 공백과 불안이 더욱 심화되기도 한다. 조직을 떠났다는 해방감도 잠시,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단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특히 퇴사 후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는 우울감을 호소하거나 정체성을 잃었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사회적 정체성의 대부분을 ‘회사원’이라는 타이틀로 설명해 왔기에, 그 타이틀을 내려놓는 순간 자기 존재에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한편, 직장을 그만두며 ‘이제는 내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는 경우도 많다. 이는 단순한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이 아니라, 퇴사 전부터 이어져 온 만성 스트레스와 심리적 탈진 때문이다. 퇴사를 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과에서는 이를 '지연성 번아웃(delayed burnout)'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직장 스트레스를 겪는 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이 퇴사 후 터져 나오며 심리적으로 더 큰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다. 따라서 퇴사 후에는 정신적 회복을 위한 적절한 휴식과 치료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제 우리는 직장 생활과 정신 건강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단순히 퇴사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이 일은 나를 병들게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다. 조직은 점점 더 성과 중심으로 바뀌고, 일하는 사람의 마음은 더 쉽게 망가진다. 조용한 퇴사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직장인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생존 전략이다. 그 선택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 사회가 사람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프리랜서, 창작자, 1인 사업가, 디지털 노마드 같은 새로운 노동의 형태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병들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물론 새로운 길에도 불안은 존재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조용한 퇴사 이후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선택이 더 나은 방향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더 많이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나 자신의 마음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