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퇴사, 나도 모르게 시작된 거리두기
어느 순간부터 출근길에 들려오는 회사 건물의 자동문 소리가 내게는 종소리처럼 느껴졌다.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는 그 소리는 오히려 내 일상의 자유를 닫아버리는 문처럼 들렸다. 회사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내 감정과 생각은 온전히 ‘회사 사람’으로 포장되어야 했다. 처음엔 나도 그 세계에 녹아들기 위해 애썼다. 눈치를 보고, 공감하지 않는 말에 웃음을 맞추고, 퇴근 후에도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메시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 소모는 조금씩 내 안에서 균열을 만들었다. 조용한 퇴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사직서를 제출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 조직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고, 감정은 철저히 분리했다. 회식은 핑계를 대고 빠졌고, 일 외의 관계 맺기를 줄이며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두었다. 회사를 다니되, 더 이상 속하지 않는 삶. 그것이 조용한 퇴사였다.
자유,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평온함
조용한 퇴사는 나에게 생각보다 큰 자유를 안겨주었다. 업무 시간 외에는 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의 밀도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내일 상무님이 뭐라고 할까’, ‘이 자료를 바꿔야 할까’ 같은 생각에 잠을 설치곤 했다. 그러나 조용히 선을 긋고 난 후, 나는 비로소 내 삶의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었다. 퇴근 후에는 책을 읽고, 요리를 하고, 산책을 했다. 주말에는 온전히 나만의 일정으로 채워졌다. 업무 성과에 대한 욕심도 줄어들었다. 승진이나 인사평가에서 오는 긴장감은 이제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회사에서 기대하는 ‘이상적인 직원’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은, 예상보다 더 깊은 평온함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내가 회사를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했고, 그 사실 하나로도 삶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가끔은 밀려오는 죄책감과 혼란
하지만 조용한 퇴사가 마냥 편안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지금 조직의 일원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동료들은 고생하는데 나는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밀려왔다. 회의 중에도 무심한 표정의 내가 보이고, 누군가 힘들다고 할 때도 공감하기보다는 무관심한 태도가 먼저 나오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회사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해 ‘그건 내 일 아니야’라고 말하는 내 안의 냉소는, 때로는 내가 사람으로서 어떤 기준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남겼다. 조용한 퇴사를 선택하면서 나는 분명히 나 자신을 보호했고, 그 선택은 나에게 꼭 필요했다. 그러나 그 선택의 이면에는 누군가에 대한 배신감, 공동체에 대한 무책임함, 그리고 여전히 조직 안에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모순이 있었다. 나는 자유로워졌지만, 동시에 이중적인 감정을 떠안게 되었다.
회사에 미련 없는 삶, 그 이후의 나
조용한 퇴사를 한 이후, 나는 회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조직이 내 미래의 중심이자 보장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단지 ‘생활을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직장 상사의 말 한마디에 잠 못 이루던 나에게, 지금의 나는 너무나 담담하게 모든 것을 넘긴다. 회사가 나를 해고하더라도, 나는 이제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정체성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용한 퇴사는 나를 철저하게 개인화시켰고, 나는 그 개인의 삶 안에서 자율성과 방향성을 다시 찾았다. 물론 죄책감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있다. 하지만 그 감정마저도 이제는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회사에 미련 없는 삶은 완전한 해방이 아닌, 책임감과 자유 사이에서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길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나는 그 안에서 나답게 존재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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